사막을 건너는 6가지 방법 @ 책

2009/05/31 23:53
사막을 건너가는 중인가? 아니면 산을 타고 있는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사막으로 그 면적이 미국과 맞먹는 사하라. 스티브 도나휴는 친구 탤리스와 함께 사막을 건너고 있다. 그들은 문명과는 완전히 떨어져서 망망대해와도 같은 사막의 한 가운데에 야영을 하고 있다. 모래 언덕과 모래 폭풍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막이 도대체 어디서 끝나는 거야?"

스티브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지만, 들려오는 공허한 메아리 뿐이다. 인생이란. 특히 변화의 시기에 있어서 인생이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건과 같다. 끝이 보이지도 않으며,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가는 신기루를 쫓아서 달리기도 한다.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동안에 언제 건너편에 다다를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다. 목표를 볼 수도 없고, 목적지에 다다랐는지 여부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도대체 인생의 목적이란 무엇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산은 목표가 눈에 보인다. 산꼭대기가 바로 저 위에 보이기 때문에 힘을 내어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정상에 다다르면 목표를 달성했음을 너무나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은퇴를 준비하면서 돈을 모으는 것은 얼마 만큼이 은퇴후에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지 알기 때문에 가능한 산행과 같다. 하지만, 인생의 목표는 무엇일까? 얼마 전에 낳은 둘째 아이를 하루에 1시간 봐주는 것, 혹은 큰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것. 부모님께 한달 얼마간의 용돈을 드리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 아니면 가정 일을 함께 해주는 것.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막을 건너는 방법보다, 산을 타는 방법을 배워왔다. 회사에서 제시한 일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월별로 계획을 세우고 실적을 점검하고 현 상황을 다시 돌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산을 타는 이러한 방법으로는 인생의 사막을 건너갈 수 없다.

인생의 변화를 위한 사막을 건너는 6가지 방법

1. 지도가 아닌 나침반을 따라가라.


어제 청도 운문사를 가기 위하여 지도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출발지와 목적지를 선택하고 길찾기를 누르자 도로이름과 번호, 몇km를 가야 하는지, 톨게이트 요금은 얼마인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사막에서 이런 서비스가 가능할까? 아니다.

우리는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서 사막을 건너 가야 한다. 사막의 목표는 모래 폭풍에 휩쓸려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서 남쪽으로 가야 한다. 이처럼, 목적지로부터 해방되고, 눈높이를 낮추면 눈 앞에 보이는 그 순간에 집중 할 수 있다.

2.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산에는 중간중간 목표를 점검해주는 산장이 존재한다. 고정된 산장에서 우리는 휴식을 취하고, 지나온 실적을 점검하고 내일 나아가야 할 거리를 가늠해본다. 하지만, 사막에는 이러한 고정된 시설이 없다. 그래서, 사하라 사막에서는 오아시스를 만나면 쉬어가야 하는 것이다.

오아시스에서 멈추어야 하는 이유는 쉬면서 기력을 회복하고,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정해야 할 것을 수정하고, 오아시스에서 같은 여행길에 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메일 193통에 답장을 하기 전까지는 계속 일을 하는 것은 오아시스를 건너뛰는 것이며, 워커 홀릭이 되는 지름길이다.

3.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사막의 포장도로가 끝나고 거기서부터 진정한 사막이 시작된다. 포장도로가 끝났다는 것은 우리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갇혀버릴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사막은 아무리 뛰어난 자동차라 하여도 어느 한 순간 깊은 모래구덩이에 바퀴를 잠궈 버린다.

회사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과의 인관관계가 서먹서먹하고,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취미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려서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된다면 이는 맥빠지고 지루하며 재미가 없다. 꼼짝할 수 없는 정체 상황에는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프레임에 갇혀버린 사고는 경직되어버린다.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은 산소가 해수면의 3분의 1밖에는 존재하지 않아서 절대적인 산소의 부족이 문제이다. 하지만, 사막은 산소의 과잉현상이다.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는 사막에서 넘쳐나는 산소로 인하여 팽팽하게 부풀어진 타이어는 모래구덩이에 빠지기 쉽다.

4. 혼자서, 함께 여행하기.

"따로 또 같이"라는 그룹이 있다. 탁월한 싱어송라이터였던 이주원이 중심이 되어 1979년 전인권, 강인원, 나동민과 함께 결성한 포크그룹이었다. 이들은 각자 솔로로 활동하다가 계기가 마련되면 함께 음반활동을 했다.

1953년 12명으로 구성된 영국인 탐험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올랐다. 1980년 라인홀트 메스너는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해냈다. 산소병도 없이 그것도 혼자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른 것이다. 산 위에서는 혼자 아니면 함께이다. 하지만, 사막을 건넌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등 뛰어넘기이다. 즉, 한 그룹의 일원으로 차량이 각자 움직이는 것이다. 완전히 혼자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짜 함께 여행하는 것도 아닌.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느낌이다.

혼자서 사막을 건너면서 필요하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5.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은 멀어지기

일상에서 친숙하고 따뜻한 캠프파이어들은 가족, 친구, 집, 그리고 직장이다. 가치관, 일상, 인간 관계, 그리고 의식처럼.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고 마찬 가지이다.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판단도 캠프파이어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 바로 캠프파이어이다. 누구에게나 캠프파이어가 있다.

인생이 변화를 겪고 자신이 사막에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캠프파이어를 더 크게 지피기 위해 나뭇가지를 찾아 다닌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캠프파이어는 진짜 세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막의 깜깜한 어둠 속으로 조금 더 다가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목민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를 알려주는 스승형 유목민과 이미 나름의 사막을 여러 차례 건너가본 경험이 있는 만능선수형 유목민, 다른 사람들이 변화의 사막을 건너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전문적인 유목인들이 있다.

6.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허상의 국경은 모래에 갇히는 것과 비슷하다. 정체현상에 빠지게 되면 두렵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데 대한 좌절감, 자괴감, 지루함, 분노 같은 감정이 따라온다. 그리고 허상의 국경선은 항상 두려움을 낳는다. 이 두려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과 연관되어 있고, 이 잘못된 믿음은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는다. 그에 저항할 용기나 통찰력이 없다면 우리를 사막 한가운데에 가두어 버릴 수도 있다.

허상의 국경선은 허상처럼 보이자 않고, 진짜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 국경선을 건너면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Ji@self Ji@memo/책 , ,

Trackback Address:http://jiself.com/trackback/996